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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시대의 국경 : 국제법의 빈틈, 궤도 위의 충돌, 거주권

by 로만티카 2025. 7. 31.

우주 시대의 국경 : 궤도·달·화성의 영토권 논쟁과 국제법의 빈틈

"우주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은 오랫동안 이상적인 우주 개발 철학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민간 우주 기업이 우주로 진출하고, 국가 간의 달·화성 탐사가 현실화되면서 이 말은 더 이상 낭만적으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진지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우주 시대의 국경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혹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뿐일까요? 우선, 현재 우주에 관한 가장 중요한 국제 규범은 1967년 체결된 외기권 조약(Outer Space Treaty)입니다. 이 조약은 국가가 달이나 행성과 같은 천체를 영토로 주장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으며, 우주 공간은 모든 인류의 공동 유산이라는 원칙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조약은 냉전 시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민간 기업의 참여, 자원 채굴, 장기적 거주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거의 없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2015년 ‘상업 우주 발사 경쟁력법(Commercial Space Launch Competitiveness Act)’을 제정해, 미국 기업이 채굴한 우주 자원에 대해 사유권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룩셈부르크, 아랍에미리트, 일본 등도 유사한 법률을 통과시키며 ‘우주 자원 권리화’ 흐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반면 러시아와 일부 국가는 이를 "신제국주의"라 비판하며, 우주를 둘러싼 소유권 경쟁이 국제적인 갈등 요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가장 첨예한 쟁점은 달과 화성입니다. NASA와 ESA는 이미 달 기지 계획을 발표했으며, 중국은 2030년대 화성 유인 탐사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일단 착륙하고 기반 시설을 구축하기 시작하면, 실질적인 영토 점유 행위가 됩니다. 이때 국제법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기술력과 자본이 곧 '우주 영토권'을 결정짓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제사회는 '우주 시대의 국경'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해양법에 준한 ‘공해 개념’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어떤 행성의 일정 구역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소유권은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죠. 반면 또 다른 시각에서는, 일정 기간 이상 점유하고 활용한 영역은 제한적 자치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달과 화성에서의 인류 정착이 단순한 탐사를 넘어 '주권'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더불어, 우주 궤도 상의 위성 배치도 새로운 국경 개념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특정 궤도 위치를 선점하거나 특정 주파수를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는 국가 간 충돌의 소지가 크며, ‘공간의 점유’가 간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특히 정지궤도(GEO)와 같은 희소 자원은 이미 과밀 상태에 이르렀고, 향후 자원 채굴 및 통신 주도권을 놓고 보이지 않는 우주 경계 다툼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우주는 모두의 것이지만, 우주 시대의 국경은 점점 현실적인 문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누구의 우주인가'에 대한 새로운 국제적 합의를 모색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규범보다 기술이 앞서는 시대에, 우주의 미래는 준비된 자가 아니라 가장 먼저 경계선을 그은 자의 것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궤도 위의 충돌 : 우주 쓰레기와 민간위성 시대의 보이지 않는 국경

21세기 들어 우주는 더 이상 정부 기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스페이스 X, 블루 오리진, 원웹, 아마존 등 수많은 민간 기업들이 저궤도에 위성을 쏘아 올리며 우주 상업화 시대를 이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급격한 변화는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우주 시대의 국경은 더 이상 지표면 위에 그어지는 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궤도 위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 궤도는 무한하지 않습니다. 특히 통신, 관측, 내비게이션에 필수적인 저궤도(LEO)와 정지궤도(GEO)는 한정된 영역이며, 충돌 회피와 간섭 방지 등을 위해 서로 일정 간격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민간 기업들이 발사 경쟁에 뛰어들면서 이 궤도는 ‘실제보다 훨씬 더 좁은 공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타링크(Starlink)입니다. 스페이스 X는 전 세계 위성 인터넷 제공을 목표로 약 4만 개에 달하는 위성 발사를 계획하고 있으며, 2025년 기준으로 이미 6천 개 이상이 운영 중입니다. 아마존도 ‘프로젝트 쿠이퍼’를 통해 3천 개 이상을 쏘아 올릴 예정이며, 중국, 인도, 유럽도 저궤도 위성망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이처럼 수만 개의 인공위성이 서로 얽히고설킨 하늘에서 우주 충돌은 단순한 시나리오가 아닌 실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2021년에는 러시아가 자국 위성을 파괴하는 반위성 미사일 실험(ASAT)을 감행해 1,500개 이상의 우주 파편을 발생시켰습니다. 이 파편들은 국제우주정거장(ISS)과 근접하며 실제 회피 기동이 필요했고, NASA는 이를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규탄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위성 파괴가 연쇄 충돌(Kessler Syndrome)을 일으킬 경우, 특정 궤도는 수십 년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현재 이러한 상황을 통제하거나 조율할 국제적 시스템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나 유엔 우주사무소(UNOOSA)에서 일부 궤도와 주파수를 관리하고 있지만, 법적 강제력이 부족하고, 민간 기업에 대한 규제도 미비합니다. 즉, 아무도 ‘하늘의 우선권’을 명확히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우주 교통 관리(Space Traffic Management)' 개념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는 위성 간 충돌 회피, 궤도 지정, 발사 간격 조정, 궤도 이탈 통제 등 복합적인 통합 관제 시스템을 의미하며, AI와 실시간 데이터 분석 기술이 접목되어야 가능한 분야입니다. 미국은 이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루고 있으며, 유럽은 ESA 중심으로 공동 관측 플랫폼 구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각국이 서로 다른 기술 체계를 사용하고 있고, 정보 공유도 제한적인 상황입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핵심은 바로 우주 시대의 국경은 더 이상 국가 간의 물리적 선이 아니라, 충돌을 피하고 기능을 분배하는 ‘운영상의 경계’로 바뀌고 있다는 점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위성 하나하나가 공간을 점유하고, 통신 주파수를 선점하며, 발사 일정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질서를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우주 경제는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우주 쓰레기는 단순한 청소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국가와 기업 간의 공간 점유 경쟁이며, 다가오는 우주 시대의 가장 현실적인 국경 다툼입니다.

우주 이민과 시민권의 경계 : 거주권은 지구에만 머무는가?

우주 탐사가 기술의 영역이었다면, 이제는 거주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의 장기 체류는 물론, NASA와 스페이스 X가 계획 중인 화성 정착지, 중국의 달 기지 건설 프로젝트까지… 인류는 더 이상 지구에만 머물려하지 않습니다. 이런 변화는 새로운 질문을 낳습니다. 만약 인간이 지구 밖에서 태어나고 살게 된다면, 그들의 국적은 어디일까요?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고 책임지는 법적 권한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이처럼 우주 시대의 국경은 지리적 개념을 넘어, 법적·사회적 경계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우주에서의 시민권이나 거주권을 명확히 정의하는 국제법은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예는 국제우주정거장(ISS) 운영 방식입니다. ISS는 미국, 러시아, 일본, 유럽, 캐나다 등 다국 간 협정에 따라 운영되며, 각국이 자국 모듈에서 발생하는 법적 문제에 대해 관할권을 가집니다. 즉, 우주에서의 범죄나 사고는 해당 우주인의 국적에 따라 적용 법이 달라지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델은 일정 기간 임시 체류를 전제로 할 때만 유효합니다. 화성처럼 장기 거주 또는 출생 인구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기존 지구 기반 국적 체계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화성 기지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느 국가의 국민으로 등록되는 걸까요? 부모의 국적을 따를까요? 아니면 새로운 ‘행성 국적’의 개념이 필요한 걸까요? 이런 맥락에서 최근 몇몇 학자들과 미래학자들은 ‘우주 시민권(Space Citizenship)’ 또는 ‘다중 행성 정체성(Multi-planetary Identity)’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는 특정 국가가 아닌, 국제기구나 우주 협약에 기반한 중립적 시민권 체계로, 지구 국경을 초월한 새로운 정치적 구성을 의미합니다. 마치 유럽연합의 시민권 개념을 확장한 모델이라 할 수 있죠. 더 나아가 일부 민간기업은 실제로 우주 국가 설립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스가르디아(Asgardia)'입니다. 이는 2016년 우주에서 독립적인 인간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시작된 프로젝트로, 자체 헌법, 국기, 시민권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현재 수십만 명이 시민권을 신청했습니다. 물론 아직 법적으로 인정된 국가는 아니지만, 이와 같은 시도는 ‘국경’이라는 개념이 중력과 대기권 안에서만 유효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또한 ‘우주 거주권’ 문제는 단지 국적의 문제가 아닙니다. 첫째, 의료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둘째, 거주 환경에서 발생한 분쟁은 어느 법으로 판단할 것인가? 셋째, 다국적 거주자가 혼합된 기지에서 문화적 충돌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이처럼 우주는 물리적으로는 광활하지만, 인간이 거주하게 되는 순간 법적 경계와 제도적 틀을 요구하게 됩니다. 즉, 우주 시대의 국경은 단순한 공간 분할이 아니라, 인권, 의무, 보호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의미합니다. 인류는 지금껏 수많은 국경을 넘으며 문명을 확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국경을 넘는 것’을 넘어 국경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 시작은 어쩌면, 지구 밖에서 태어난 첫 아이의 출생신고서에 누구의 이름이 적히느냐에 달려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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